성경강좌

마태복음 5장 4절 해석_함은호 목사_성경사역연합 사역위원

빠사나 2017. 8. 8. 14:12

마태복음 5장 4절 해석_함은호 목사_성경사역연합 사역위원


마태복음 5장 4절(“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은 산상수훈(마 태복음 5-7장)의 서론부(5:3-16)에, 그 중에서도 ‘팔복’(5:3-12)의 두 번째 복에 위치해 있다. 마 태복음 5장 4절의 직접적 배경이 되는 이사야 61장 2절 하반절에 대한 이해와 팔복을 보는 시각에 대한 이해는 마태복음 5장 4절 해석을 좀 더 올바르게 이끌어줄 것이다.


구약적 배경: 이사야 61장 2절 하반절

마태복음 5장 4절의 직접적인 구약적 배경은 이사야 61장 2절 하반절(“…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이다. 여기서 ‘모든 슬픈 자’는 이사야 61장 1절의 ‘가난한 자’, ‘마음이 상한 자’, ‘포로된 자’, ‘갇힌 자’를 포괄하는 표현이다. 이사야 61장 3절 상반절은 이 슬퍼하는 자가 시온 백성임을 알려준다. 즉 시온 백성이 슬퍼하는 이유는 이방 세력의 통치를 받으며 압제에 시달리는 현실과 관련되어 있다. 이런 자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의 사역으로 말미암는 아름다운 소식의 전파, 고침 받음, 자유케 됨, 놓임과 함께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의 선포로 인한 역전의 모습 때문이다.


팔복을 보는 시각

팔복은 여덟 가지의 복을 말한다. 그러나 이 복의 면면을 보면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복임을 알 수 있다. 팔복은 세상의 복과는 반대되는 역설적인 복이다. 이 복은 천국을 소유하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서,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을 복이라고 규정한다. 그런 점에서 팔복은 천국 백성의 모습이 어떤 지를 여덟 가지의 복으로 특징지어 요약적으로 제시한 것 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복된 모습은 인간을 비롯한 어떤 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가능케 된다(참조 5:11). 그런 면에서 팔복에 나타난 천국 백성의 모습은 구원론적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팔복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세상과의 싸움을 전제한다. 그래서 팔복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주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미 구약적 배경에서도 살펴보았듯 애통하는 자가 애통하는 이유는 시온 백성이 이방 세력의 통치를 받으며 압제에 시달리는 현실을 반영한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창조되는 천국 백성이 애통하는 이유 역시 이와 유사하다. 천국 백성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갈망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를 반대하고 거부한다. 더 나아가 세상은 주님의 통치를 바라는 천국 백성을 싫어한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가려는 천국 백성은 세상의 압제와 억누름을 당하는 상태에 놓이게 되고, 자신이 바라는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천국 백성은 나름대로 이를 극복하려 하지만 해결은 안 되고 도리어 애쓸수록 벽에 부딪히는 것 같음을 경험한다. 이렇듯 해도 해도 안 될 때 천국 백성은 무력함을 느끼며 애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바로 예수님에 의해 만들어지는 천국 백성의 특징 적인 모습, 복된 모습이라는 것이다.


귀결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귀결절의 내용은 이런 애통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 또는 보상을 의미한다. 이 이사야 61장 2절 하반절의 약속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사역의 성취로 주어질 것이다. 부연하면, 이미 이루어진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으로 인해 현재적 보상이 주어지고 있고,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한 메시아 사역의 완전한 성취로 보상이 완성될 것임을 확실히 소망하게 한다. 이는 완전한 하나님의 위로는 예수님의 재림 시에 가능할 것이지만, 이미 현실에서 어느 정도 천국 백성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주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들은 진정으로 복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동시에 애통하는 자를 통하여 천국이 확장되고 있음을 또한 암시해준다.


성경적 삶과 목회사역에의 적용

그리스도인은 개별적인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이 직장과 사회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고 할 때, 자신이 바라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듯 자신이 바라는 가치대로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가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이끌고 가는 것은 고사하고 끌려가지 않는 것조차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눈물을 흘리며 시도하고 시도해야 한다. 여기에는 애통하며 길이 참아야 하는 인내의 삶이 요구된다. 이것은 직장과 사회관계보다는 그나마 쉬울 것 같은 가정에서조 차도 매한가지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애통하며 나아가는 삶의 모습이 복됨을 인정하며 그러한 삶을 포기하지 말자. 이런 애통하는 모습은 예수님께서 만드시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수고가 덧없어 보이고 전혀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그런 애통의 눈물로 인해 조금씩 천국이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로 위로를 받자.

교회 공동체 내에는 다양한 수준의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있다. 믿음이 약한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교회 공동체는 부모의 심정으로 대해야 할 정도로 정말로 오랜 시간인 내가 요구된다. 특히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찾아보기 힘든 대부분의 교회 공동체의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우리는 애통해야 하는 내용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가르침이 무너진 교회 공동체들, 삶이 엉망인 교회 공동체들, 노골적으로 세상에 의해 손가락질 받는 교회 공동체들 등 교회 공동체 내외부의 여러 안타까운 모습들을 보며 하나님 의 마음을 품고 애통하며 나아가자. 물론 바른 모습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려 할 때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는 교회 공동체들의 눈물어린 기도에도 동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