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좌

예레미야 독자세미나(송병현 교수)

빠사나 2009. 8. 31. 00:35

 

 

주관 : 성서유니온 선교회 서울서북지부

기간 : 2009년 8월 29일(금), 30일(토)

강사 : 송병현(백석기독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 예레미아서 ▶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옌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자신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나는 왜 이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g.o.d의 "길" 중에서)

 

 

저는, 웃으며 떠들어대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즐거워하지도 않습니다.

주께서 채우신 분노를 가득 안은 채로,

주의 손에 붙들려 외롭게 앉아 있습니다.

어찌하여 저의 고통은 그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저의 상처는 낫지 않습니까?

주께서는,

흐르다가도 마르고 마르다가도 흐르는

여름철의 시냇물처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분이 되셨습니다.(렘 15:~18)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과 새언약을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나 주의 말이다.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그 때에는 이웃이나 동포끼리 서로 '너는 주를 알아라'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

(렘 31:31~34)

 

우리에게는 눈물의 선지라라고 알려진 예레미야, 그는 진정한 민족주의가 어떤 것인가를 삶을 통해서 보여주었던 사람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운명이 마치 석양의 태양처럼 역사의 지평선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끊이지 않는 눈물에 흐려진 시야로 지켜보아야 했던, 그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했기에 괴로워했던 이스라엘의 한 시민이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따스한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듣고자 찾아온 백성들을 적군과 무모하게 싸우지 말고 항복하여 그들의 포로가 되어 따라가라는 냉혹한 권면으로 되돌려 보냈던 선지자였다. 그의 눈물은 연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백성들을 끔찍할 정도로 사랑했던 사람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가 남긴 책에서 이 시민 예레미야와 선지자 예레미야의 끊임없는 갈등을 목격하게 된다.

 

예레미야서는 분량적으로 선지서 중 가장 긴 책이다. 이 책의 분량은 소선지서 12권을 모두 합한 것 보다 더 많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신상과 느낌에 대하여 구약의 그 어느 선지자들보다도 많은 글을 남겼다. 그는 어느 선지자보다도 "인간적인 사람이었다"(Bright). 예레미야는 이러한 인간미를 지닌 사람이었기에, 우리는 장엄하고 거룩한 이사야, 철저하게 자신을 절제했던 환상가 에스겔, 불을 토해내던 아모스보다 이 선지자에게 더 정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2600여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지만, 마치 우리 이웃처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어떤 시대를 살았는가? 그는 어떤 메시지를 남겼는가? 본문을 주해하기 전에 잠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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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적 상황

 

 예레미야가 어느 시대에 사역했는가는 매우 쉽게 판명 할 수 있다. 그는 요시야 왕 통치 말기 시대에 사역을 시작했으며, 예루살렘이 패망 한 후에도 계속 유다에 거하다가, 581년에 이집트로 끌려가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그러나 그가 정확히 언제 태어났고, 언제부터 사역을 시작했는가는 1:12의 "요시야 왕 즉위 13년에 그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A. 급변하는 근동정세

앗수르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바벨론과 애굽이 움직이기 시작 함

 

B. 유다의 상황 (원숫자는 통치순서이다) 

 

                                         요시야(주전 639~609년)

 

여호아스(주전 609년)      여호야김(주전 608~598년)     시드기야(주전 598~586년)

 

                                         여호야긴(주전 597년)

 

C. 예레미야가 사역하던 시대에 유대인들은 근동의 세 곳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았다.

-유다 : 바벨론이 597, 586년 유다의 중류층 이상은 대부분 강제로 끌고가고 가난한 사람들만 남겨 둠.

애굽 : 유다에 남아있던 소수 사람들 중 일부가 바벨론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망명.

바벨론 : 바벨론 제국을 형성하기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유대인들이 강제로 끌려와 정착 함. 앗수르의 기록에 의하면 이스라엘(북 왕국)에서 수 십만 명이 끌려와 메소포타미아 전 지역에 흩어졌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왕 비슷한 정책을 구상했다. 그는 유다에서 귀족들과 기술자 등을 모조리 끌어와 바벨론 주변에 정착시켰다. 무라슈 문서보관소(Murashu Archive)에서 발견된 기록(주전 5세기 후반)에 의하면 바벨론으로 끌려온 유다 사람들은 매우 빨리 적응했으며 금융과 교역에 깊이 파고듦으로 바벨론의 경제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유다 사람들 사람들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온 그들의 외교정책은 다음과 같은 목적을 두고 행해졌다

*민족정신과 투쟁세력 파괴

*사회적, 종교적 지도자들을 제거함으로 정치구조 파괴

*바벨론 군대 보강

*바벨론의 경제 부흥

 

D. 바벨론에 형성된 유대인 공동체의 성향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은 바벨론 사회에 빨리 흡수되었지만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유지할 수 있었다. 장로제도를 그대로 보존하였으며, 자신들의 족보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스2, 느7) 그들은 또한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까지 본국과 계속 연락을 취했다(렘29) 

그들은 비록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모세의 율법을 최대한 지키고 있었다. 다양한 종교적인 예식, 할례, 안식일 성수 등이 그대로 지켜졌다(사56:2~4; 58:13 겔 44장~46장) 그러나 에스겔에 의하면 그들의 영적 상태는 좋지 못했다, 그들은 배교적인 사고를 버리지 못했으며, 바벨론에서도 우상숭배와 모든 종류의 사회적 악을 행하고 있었다(겔18장)

 무엇보다도 이 공동체는 영적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대해 지속적인 비난을 퍼부었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가 자신들을 끝까지 지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대근동의 전통에 기초하여 자신들의 수호신 여호와, 가나안 땅, 이스라엘 사람들은 떼어놓을 수도 없고, 외부 세력이 침범할 수도 없는 관계를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이런 신앙적 교만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여건에 의해 형성되었다(생략)

 

E. 주요연대(생략)

  

2. 선지자 예레미야

 

㉠예레미야가 언제 선지 소명을 받았을까?

 

㉡이름 : 여호와께서 자유케 하신자, 여호와께서 존귀케 하신자, 여호와께서 세우신 자

 

㉢예레미야는 실로 아픔을 아는 자였다.

*이스라엘 최후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켜보며 괴로워했던 선지자였다. 그는 피어오르는 맹목적인 민족주의(Nationalism)를 지켜보았으며, 씁쓸한 마음으로 예루살렘 정계에서 치열한 공방을 펼쳐가는 친바벨론파, 친애굽파의 외교적 줄다리기를 지켜보아야 했다. 그는 정치적, 종교적 세력을 유감없이 비난했다. 그 댓가로 그는 많은 고통을 당했다. 매를 맞았고(20:2), 재판장에서 반역죄가 적용되기도 했다(26장, 37:11~16) 그를 죽이려는 음모도 있었다(18:18;12:6) 사람들은 그를 빈 물저장 탱크에 감금하기도 했다(38:1~13). 중략~

*이 와중에도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회개하면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하여 외쳤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가족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받았다(11:21~23; 12:6).

*가장 참기 어려웠던 것 중 하나가 거짓 선지자들의 위선과 조작된 메시지였다.

*이 모든 수난과 고통들이 그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속의 "반항/원망"의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11:18~12:6; 15:10~21;17:12~18; 18:18~23; 20:7~18) 예레미야는 때로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다는 생각에 괴로워했고, 때로는 하나님께 자신의 "원수"에게 보복을 해달라고 매달리기도 했다. 그는 또한 멈출줄 모르는 고통에서 비롯된 신음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불변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갈등은 불신이라기보다는 진솔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15:17~20; 20:7).

*많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용기 잇는 사람이었다.....그리고 그는 좌절 속에서 소망을 먹고 살았다.

  

3. 예레미야의 주요 개념

㉠여호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온 세계에 절대적인 주도권을 행사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백성들은 마치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힘이 없어서 앗수르와 바벨론의 신들에게 그들을 내어준 것으로 생각하지만, 선지자는 유다 뿐만 아니라, 애굽, 바벨론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일이 여호와의 주권 하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주의 백성에게 임한 어려움과 환난 역시 하나님께서 특정한 목적을 두고 행하신 일이라는 것이다.

 

㉡옛 율법과 새 율법

예레미야는 인간의 마음(heart)에 대해 깊은 이해를 지녔던 자다. 그는 오직 죄만이 이스라엘의 반역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백성들의 죄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이성의 중심인 마음(heart)이 썩은 것에서 비롯되었다(17:9). 이처럼 철저하게 썩어버린 마음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치료될 수 없었다. 신체적인 할례도 마음의 할례가 있지 않는한 의미가 없었다(4:4; 9:26). 심지어는 요시야의 개혁과 같은 대단한 규모의 개혁운동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오직 언약만이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31:33).

 

㉢미래에 대한 소망

선지자는 비록 이스라엘에게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지만, 그의 책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미래에 대한 소망이다.

 

㉣예레미야와 모세

예레미야서는 선지자를 마치 제2의 모세처럼 묘사해 나가고 있다.

 

 

4. 예레미야서 비평

 

㈎둠(B. Duhm)(1901)은 예레미야서 출처를 3개로 구분함. 루돌프(W. Rudolph)(1947)등

㈏맛소라 사본과 70인역의 현저한 차이

㈐구체적인 시간이 언급된 예레이야의 메시지들

 

 

5. 예레미야서의 구조

 

 표제 : 선지자의 시대 (1:1~3)

 ⑴ 예레미야의 소명과 환상(1:4~19)

 ⑵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과 경고(2:1~6:30)

 ⑶ 성전설교와 다른 경고 메시지들(7:1~10:25)

 ⑷ 파괴된 언약과 선지자의 불평(11:1~15:21)

 ⑸ 경고, 권면, 선지자의 좌절(16:1~20:18)

 ⑹ 유다와 열방을 향한 메시지 : 심판과 소망(21:1~25:38)

 ⑺ 예레미야와 거짓 선지자들(26:1~29:32)

 ⑻ 회복에 대한 소망(30:1~33:26)

 ⑼ 주전 605년~586년 사이에 있었던 일과 메시지(34:1~39:18)

 ⑽ 예루살렘 함락이후 일들(40:1~45:5)

 ⑾ 열방에 대한 심판 선언(46:1~51:64)

 ⑿ 역사적 자료 추가 : 주전 597년~561년까지 있었던 일 요약(52:1~34)

 

※ (도전) 왜? 예레미야서가 여호야긴 이야기로 끝나는가?

 

여호야긴은 예루살렘이 마지막 멸망하는 것을 보고, 유다의 왕으로 복직을 기대하였다가, 전혀 가능없음을 알고 포기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긴세월 감옥에 지내다 보니 감옥에서 언제 풀려나 개인의 자유가 온다는 것 조차 포기하였을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면 기다릴게 무엇이겠는가? 

죽음?

그렇다! 아마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37년째 되던해에 희소식이 들린다.

석방!  희소식!  복음!

기대할 것이 없을 때 희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믿음이 무엇인지 아렴풋이 감이 오는 듯하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본성!

이것이 우리속에 얼마나 많이 내재되어 있어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가?

모든 것을 포기(자기부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믿음이 있어야겠다.

 

여기 예레미야 마지막 부분에 여호야긴 왕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적고 있다. 렘(52장 31절~34절)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