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자기부정
죄의 본질은 이기심
십자가는 희생과 헌신과 수고가 아니고 자기부정(마 16:24)이며 자기를 비우는 것이며(빌 2:7), 자아, 자존심, 이기심, 교만, 욕심이 죽는 것입니다. 유한한 존재여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잘난 척하고 하나님에게서 독립하여 홀로 서겠다는 것이(바벨 성을 쌓듯) 죄의 본질입니다. 믿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내려놓고 다시 하나님께 나와서 의지하고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다는 분들이 자신만만한 생각을 갖게 되고 세상을 복음화 하고 변혁시키겠다고 꿈꾸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칩니다. 논리가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라, 겸손하라 하다가 세상을 정복하라, 정상을 점령하라, 엘리트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니 믿음이 자랄 수가 없고 자아가 자라게 되고, 그런‘믿음 좋은’훈련된 제자들과 교인과 사역자가 모인 곳이면 다툼과 분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당연하지요. 서로가 자기가 담임목사가 되고 자기가 교회의 주인이 되려 하고 신학교 총장이 되려 하고 자기가 총회장과 감독이 되려하니 시끄럽지요. 그러면서 성화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자신들을 합리화합니다. 이 얼마나 모순된 논리입니까?
우상을 섬기는 이유 - 이기심
참 하나님이신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에게 두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첫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고 존경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자연히 자기부정을 해야 하지요. 둘째,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이기심과 욕심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것이 싫은 것입니다. 참 하나님 만나기가 싫고 두렵고 불만이고, 그렇다고 하나님 없이는 살 수가 없고 ― 아담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가인이 벌을 받고, 인류가 홍수에 죽고, 바벨성을 쌓던 사람들도 다 흩어지게 되니 그렇게 하신 하나님이 두렵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그래서 대체하고자 만든 가짜 신이 우상입니다. 우상은 인간들이 만든 신입니다. 자기의 이기심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자기가 만든 신이 우상입니다. 복을 빌고 복채를 올려놓고 자기만 잘 되게 해 달라는 식으로 섬기는 우상말입니다. 그리스도인 중에도 여호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하면서 실은 자기만을 축복해 주는 자기의 신으로 만들어 놓고 섬기는 우상 숭배자가 대부분입니다. 내 가족과 내 교회와 우리 교파, 우리나라를 생각하는 이기적인 그리스도인들, 호국 종교인 다른 종교는 그렇다 치고 요즘 미국교회에서도 볼 수 있고 남북통일과 경제 성장을 위하여 기도하는 한국교인들에게서도, 우리 팀이 이기기를 기원하는 운동선수들과 그들의 교회 , 그 외에도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새 창조, 자기부정, 성화
새 창조(구속)는 순간적으로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중생을 순간적으로 보기 때문에 혼란이 있습니다. 중생(새 창조)은 칼빈의 말처럼 일평생에 걸쳐서 이루어집니다. 즉 자기 부정이 되는 만큼 성령을 따라 살게 되고 어두움에서 벗어나는 만큼 빛 가운데 살게 되고 그 만큼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화 교리와 중생 교리는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과 영(성령)의 대립과 대적 관계는 구속과 새 창조가 점진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5:19-21의 육의 일(삶)과 5:22-23의 성령의 열매가 동시에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화되는 만큼 점차적으로 육의 일이 줄어들고 성령의 열매가 충실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행함의 열매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 지식에서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면 그만큼 믿음이 자라고 그만큼 순종도 더 잘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신뢰와 의지함)이 자라는 만큼 자기부정이 이루어지고 육이 물러나는 만큼 성령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는 것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고 점차적으로 온전히 영접하는 상태로 자라갑니다. 마치 친구와의 교제가 점차 깊어지면서 우정과 신뢰가 자라고, 연인이나 부부 관계에서도 신뢰가 점차 형성되고 그 만큼 사랑과 순종도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인격을 이해하면 쉽습니다.
지금까지 믿음이나 영접이나 구원이나 중생 등을 단회적이고 순간적인 것으로 오해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인격의 변화에 대한 무지입니다. 하나님의 주권만 이해하고 인간의 인격과 자유의지를 무시한 데서 온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개념을 정리해야 합니다. 도대체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 무엇을 가르치는 것입니까? 무엇이 죽고 삽니까? 영혼이 죽는다,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부활을 믿어야 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가장 핵심되는 것은 자기부정입니다. 곧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그 자유를 또는 자아(ego)를 그리스도께 내어놓고 주인의식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입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내가 질 내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고생과 희생과 헌신입니까? 아닙니다. 자기 부정입니다. 자기부정이 되면, 즉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면 나는 자동적으로 그분의 것이 되기 때문에 헌신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헌신은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합니다.
자기부정 곧 십자가 없이 헌신과 부활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러한 자기부정을 다음과 같이 발전적으로 고백합니다.
빌 3:10-11“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이제는 자기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살아나서 새로운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성화는 많은 다양함과 개인차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 소속되고 구별된 성화의 본질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어린이는 단순하게 믿고 단순하게 순종하여 하나님 나라에 더 가깝지만 저와 같은 사람은 성경을 많이 배웠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훨씬 넓게 섬세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면에서 성화되어야 하고, 하는 일의 영역도 넓고 사역지도 넓기 때문에 여러 사람과 여러 사역에 모두 충실하고 거룩해야 하고, 기도할 대상이나 제목도 많고, 섬겨야 할 사람도 많기 때문에 성화가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특히 자존감, 자아 인식과 정체성, 그리고 자존심은 인격체만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선물입니다. 이것도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자존감 때문에 많은 죄를 범합니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자랑하고 교만하고, 자기 원하는 대로 하려고 합니다. 앞에서 이미 설명한 것처럼‘자기부정’이 구원과 성화의 기본이요 열쇠입니다.
마 10:38-39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딤전 4: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귀한 것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랑의 원리로 바르게 사용하면 죄가 아니지만, 악용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죄가 존재하는 것처럼 오해하여 왔습니다. 특히 헬라 사상의 영향입니다. 그러나 죄는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론적인 어떤 물질이거나 영물이 아닙니다. 사단도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귀한 천사였는데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역하고 자기의 왕국을 추구하기에 적대자(사단)가 된 것입니다. 인간도 자유의지와 인격을 받았는데 이 귀한 것을 악용하거나 하나님께 대항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하와의 죄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서 잘못된 것을 죄라고 부르는 것뿐이며 실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죄의 근원이나 시작(원죄)은 모든 인격체 자체라고 해야 옳습니다.
성화를 논할 때 하나님과 나와의 바른 관계를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바르게 하도록 설명해야 합니다. 식욕이나 성욕 자체가 죄가 아니고, 자존심 자체도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올바르게 사용하면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즉 자기부정이며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새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셔 들이면서 자기는 내려앉고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사셔야 하며 그가 나를 전적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항거하지 않고 자기부정(십자가)의 길을 걷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남편에게 순종하고, 부모에게 순종하고, 상전에게 순종하고, 권세 잡은 자에게 복종하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다스림 받는 훈련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모셔 들이고 내가 그에게 복종하는 것(자기부정)이‘선’입니다.
성경은 믿음을 경외와 일치하게 설명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을 하나의 신념, 그것도 자기의 신념으로 오해합니다. 믿음은 결코 자기 신념이 아닙니다. 반대로 자기부정입니다. 초신자일 때나 젊을 때는 겸손히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의 의도를 잘 모르므로 거의 맹목적으로 순종하고 따르다가도, 신앙생활을 오래하면서 점차 자신감이 생기고 자기주장을 하게 되고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노력으로 무언가를 해 드리고 싶고, 또 곧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퇴보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자기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시키셔서 믿음이 자란다는 말은 자기의 무능과 무지를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하시는 내용과 처리하시는 방법 등이 더욱 신비롭고 놀라워서 무조건 하나님만 믿고 하라고 하시는 대로 따라가게 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
성령님께 속하지 않고 나 자신이 주인으로 있으면서 내 생각대로 주를 믿고 섬기는 자는 아직 성령(영)에 속한 자가 아니고 육에 속한 자입니다.
고전 3:1-2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아직 십자가의 도를 잘 깨닫지 목하여 여전히 자기 자신이 주인 노릇하고 성령님의 지시를 잘 받지 못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무엇을 보면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고전 3: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시기와 분쟁이 있으면, 아직 중생하지 못한(자아가 죽지 않은) 육에 속한 자요 사람을 따라 행하는(걸어다니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린아이의 수준에서 점점 자라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아직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도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므로 구원받은 자라는 이론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학자들도 말합니다. 바울은 고전 3:4 이하에서 바울이나 아볼로를 따른다고 주장하며 서로 다투고 있는 이들이 바로 육에 속한 자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런 다툼은 믿은 지 얼마 안 된 초신자보다 오래 믿은 신자나 지도자들에게서 더 많이 볼 수 있는 현상으로서 아무리 오래 믿었어도 자기부정이 안 된 사람, 자아가 강한 사람은 아직 육에 속한 자요 어린아이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자기부정과 십자가의 도)로 하지 않는 사람은 아예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합니다. 자녀 교육에서 어릴 때부터 싹트고 있는 자아(自我)를 잘 관리하고 억제하여 자기부정과 순종의 기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매질과 징계(discipline)가 필수적입니다.
잠 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지혜 시리즈」모리아출판사刊, 윤종하 著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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